걸어서 귀순한 북한군…'북송' 언급에 "차라리 날 죽여서 넘기라고 했다"

구연주 기자 / 기사승인 : 2024-08-23 11: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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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말 임진강 건너 귀순…7일 걸려 탈북
"DMZ 다가서자 국군이 조명 쐈다"
2019년 7월 말 중부 전선에서 임진강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출신 A씨.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


"철책 500m까지 접근하니 불빛이 저한테 쫙 쏟아졌다" 지난 2019년 7월 말 중부 전선에서 임진강을 통해 가까스로 귀순해 한국 땅에 도착한 북한 군인 출신 A씨는 국군이 조명을 쏘자 손을 흔들었다. 이후 귀순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우리 군 안내 방송에 따라 A씨는 철책에 있는 문까지 갈밭을 헤쳐 약 500m를 더 걸었다. 철책 앞 문이 열렸다. 국군 10여 명이 뛰어나왔고, 이들은 A씨를 둘러싼 채 총을 겨눴다. A씨는 국군들이 무서웠지만, 티를 내지 않고 선글라스를 썼다. 이는 한국 언론에 보도될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A씨는 22일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 출연해 5년 만에 처음으로 귀순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다. 함경남도 덕성에 거주했던 A씨는 3년 동안 탈북을 준비했다. 그는 "북한에서 흘러내려오는 강줄기를 쭉 따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머릿속으로 지도를 다 외웠다"고 했다. 그는 또 "3시간 정도 물에 떠 있을 수 있도록 저수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했다"며 "3시간이면 웬만한 강을 건너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주된 탈북 루트로 꼽히는 중국 국경을 거치기엔 인맥이 없었던 A씨는 고민 끝에 "비무장지대(DMZ)로 탈북 루트를 선택했다"고 했다.

경기 파주시 임진강 하구. 연합뉴스


그가 한국 땅을 밟기까지는 7일이 걸렸다. 덕성에서 DMZ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A씨는 "비 오는 날 돈만 주면 다 숨어 있을 데가 있다"며 "북한이야말로 진짜 (생존형) 자본주의"라고 했다. 실제로 A씨를 발견할 당시 임진강 유역에는 짙은 안개가 껴서 시야가 100m에 그쳤다고 한다. 이날 장맛비로 강 수위가 올라가고 유속은 초속 1.4m에 달했다. A씨는 이날 오후 11시56분쯤 군사분계선(MDL) 남쪽 임진강 급류를 타고 머리만 내놓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A씨는 지난 20일 새벽 강원도 고성군 일대 휴전선을 걸어서 귀순한 20대 북한국 병사에 대해 "'참 힘든 결심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분도 저처럼 DMZ를 넘어올 때 자기가 넘어온 이후에 가족은 어떻게 될지 등 모든 고민거리가 엄청 컸을 텐데 한국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선 실패도 할 수 없다"며 "자기가 스스로 선택해 실패하면 억울하지는 않다. 그 선택의 기회가 대한민국에는 있다"고 했다. 이어 "뭘 원하든 여기 와서는 최소한 백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당시 귀순 후 하나원에 있던 A씨는 "나도 저렇게 강제로 넘어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두근두근 떨렸다"고 했다. 그는 "하마터면 판문점으로 갈 뻔했는데 그 때 '넘길려면 날 죽여서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중국을 통해 몰래 가겠다'고 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복무 10년을 하는데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이렇게 사는데 그게 지옥이 아니면 뭐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가족과 헤어진 지 너무 오래 됐다"며 "북한에서는 10년, 13년 있어도 가족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사실 북한에서 처음 넘어와 한국 사회를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한국에서 북한 사람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국적을 회복시켜주고,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거에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현재 공부를 마치면 그에 버금가게 좀 떳떳하게, 통일 후에 저기 북한의 김씨 정권이랑 (북한 사람들이) 봤을 때 '저 녀석 남조선으로 도망가서 아주 막 살았구나' 하지 않게끔, 북한 사람들이 봤을 때도 제가 '남조선으로 도망가더니 헛살지 않았구나' 할 정도로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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